2009년 12월 19일
빔 반데키부스 (테아트르 드라빌)
벨기에 안무가 빔 반데키부스(Wim vandekeybus)가 이끄는 울티마 베즈(Ultima Vez)의 뉴블랙(nieuwZwart)이 6월 9일부터 13일까지 테아트르 드 라 빌(Théâtre de la Ville)에 초청되었다. 뉴블랙은 2006년 슈피겔 이후 3년 만에 빔 반데키부스가 내놓은 신작으로 5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하였고, 올해 개최되는 다양한 무용페스티벌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연극적 요소와 영상은 줄이고 '새로운 피지컬'에 몰두하기 위해 젊은 무용수들의 테크닉을 적극 활용하였고 피터 버엘스트(Peter Verhelst)의 시와 마우로 폴로스키(Mauro Pawlowski)의 전자음악을 무대로 흡수했다. 이들은 아크로바틱하고 히스테릭한 움직임을 시종일관 공간에 새겼다. 그러나 새로운 논쟁거리는 없었다.
"나는 또 다른 신체와 대면하고 싶었고 그들을 통해 자극을 받아 나의 창조성을 실현하고 싶었다." 이번 작품의 모티브와 주제는 '신 피지컬의 실험'이었다. 1985년 얀 파브르(Jan Fabre)의 The Power of Theatrical Madness 출연으로 무용계에 입문한 빔 반데키부스는 1986년 마드리드에 울티마 베즈를 창단하여 자신만의 춤어휘를 발전시켜왔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몸은 90년대에 봇물 터지듯 쏟아졌던 수많은 '몸'들 가운데서 폭력, 광기, 속력, 비틀림 등의 수식어로 점철되어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았다. 이번 작품은 이제까지 쌓아온 자신의 정체성에 도전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했고, 그 도구로서 새로운 무용수와 피지컬을 선택하였다.
"나는 새로운 무용수들과 함께 나의 춤어휘를 새것으로 바꾸거나 창조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몸은 나의 작품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세대에 속해있고 다른 방법으로 움직인다. 그들이 지닌 젊음은 내가 할 수 없는 움직임들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젊음에서 비롯된 움직임은 아크로바틱이다. 무대를 뒤덮은 은색 셀로판지를 걷어내자 나체의 생명체들이 네발로 튀어나와 무대를 종횡무진 달린다. 동물적이고 공격적인 움직임. 발육이 덜 된 생명체들은 두 발로 서지 못하면서도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전시하고 있다. 목과 등을 이용해서 구르기, 핸드 스핀, 몸을 비틀어 떨어지기, 뛰어올라 공중에서 회전하기, 한 손으로 점프하기 등의 곡예는 이번 작품의 근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지고 난폭해지며, 야성적으로 변한다.
새로운 피지컬의 정체성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은 시각을 즐겁게 하기 위한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불안, 격정, 격투, 분노 등 공격적인 감정에 전염되어 나타났다. 게다가 라이브로 연주된 마우로 폴로스키의 록 음악 속에서 움직임은 한층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전작에서 빔 반데키부스가 추구한 미학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드로서 작용하는 긴장감, 에너지, 폭력성의 강도는 약해졌다. 왜냐하면 움직임을 구성하는 형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가공된 것에서 날 것 그대로, 계산된 움직임에서 즉흥으로 변화하면서 에너지가 산만하게 흩어졌고 긴장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작업 방법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의도적인 것 혹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치 서로 귀를 기울여야하는 즉흥 재즈 연주회에 있는 것처럼 작업했다.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공되지 않은 상태, 본능적인 그리고 존재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힘으로 서로를 연결시켰다. 나는 덜 연극적인 새로운 피지컬을 찾고 싶었다."
'새로운 피지컬'은 벨기에 무용단 '세 드 라베(Les Ballet C de la B)'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피지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몸의 '충돌'이 만드는 거칠고 격렬한 감각이 그러했다. 예를 들어 누워있는 남자 위에서 물구나무서서 그 위로 떨어지거나 멀리서부터 달려와 공중으로 도약하며 다른 무용수의 신체를 무너뜨리는 장면, 저항할 힘조차 없는 무용수를 몸으로 밀쳐서 무대 밑으로 떨어트리는 장면에서 여타의 무용작품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물리적인 폭력성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셀로판지를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던 무용수가 셀로판지가 벗겨지자 비명을 지르면서 일렬로 서있는 무용수들과 충돌하고, 무대 상수에 매달린 직사각형 쇠판에 부딪히고 바닥에 나뒹구는 장면에서는 자학과 가학을 통한 불안과 공포를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각은 감각으로 환원될 뿐, 한계를 넘어서거나 다른 무언가와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나마 움직임에 독특한 감각을 덧입히는 요소는 피터 버엘스트의 시다. 무대에서 해설자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데 그치지 않고 매번 퍼포먼스를 하며 무용수들과 에너지를 공유한다. 시는 움직임을 해석하거나 설명하는 보충적인 역할보다는 언어가 주는 비언어적인 감성을 움직임에 전달하고 그 형태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대지를 보라, 우리가 아이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걷는 것을 익히는 이 대지를 보아라.> 여기에 대응하는 움직임은 신체를 가학하는 장면으로 시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말과 춤은 작은 단위의 쪼개진 상태로 만나 음침하고 축축한 감각을 살린다.
센세이션 없는 평범한 신작
이번 작품에서 신체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 뉴블랙에서 일곱 무용수의 신체는 공포와 불안이 잠식한 무의식의 세계, 연옥 혹은 지옥일지도 모르는 세계, 모든 것이 두렵고 타협과 양보도 없는 세계가 되었다. 그들은 비틀리고 경련을 일으키고 절규했다.
하지만 빔 반데키부스가 시도한 '새로운 피지컬의 실험'은 이전 작업에서 그가 보여준 성과만큼 강렬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지극히 평범했다. 젊은 무용수들(22-30살)의 몸과 테크닉은 안무가가 의도한 새로운 형태의 피지컬을 충실히 만들었고, 이것은 확실히 이전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자학적이고 가학적인 성격을 지닌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기에 효과 또한 적었다. 안타깝게도 작품의 키워드가 될 정도로 빈번히 사용된 충돌과 격돌의 미학은 관객으로부터 그가 찾고 싶었던 만큼의 '낯선 감각' 혹은 '극단의 감각'을 환기시키지는 못했다.
# by | 2009/12/19 03:50 | 춤이말한다 | 트랙백 | 덧글(1)


